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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회고
    기록/1년이 지남 2018. 12. 27. 09:04

    글 쓰는거 너무 게을러져서 1년에 한 번 쓰기가 되어 버렸다니. 하하하. 좀 더 자주 써보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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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반기부터 기억을 돌이켜보면 아무래도 가장 큰 이슈는 비자신청 문제였다. 처음 호주에 올 때부터 계획했던 루트였는데 다행히 회사의 스폰을 받아 4년짜리 457비자를 신청했다.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회사에서 계약되어 있는 법무사쪽에서 꼼꼼하게 체크해주는 과정이 없어서 고생을 좀 했다. 스스로 이민성 홈페이지와 서류들을 직접 다 뒤져보고 다른 법무사를 개인적으로 고용해서 몇 번씩 더블체크를 하면서 내가 요청을 하면 그제서야 일을 해주더라. 문제가 될 만한 상황에 대해서 먼저 고지해주거나 준비해주지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주변 사람들 말로는 다들 이렇게 스스로 꼼꼼하게 체크해야 한다고 하긴 하더라. 법 관련해서 처리해야 하는 일은 처음이다보니 혼란이 많았던 것 같다.


    내가 신청하는 비자가 3월에 폐지될 예정이였는데 준비를 다소 늦게 시작해서 부랴부랴 넣어 더 정신이 없기도 했다. 폐지 예정날 바로 하루 전 날 저녁에 들어간 건 진짜 똥줄타는 경험이였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무사히 신청을 마쳐서 정말 다행이다. 올해 가장 정신없었던 일이기도 했지만 가장 감사하게 여기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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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자 신청이 마무리 된 이후로는 영어나 커리어적으로 너무 안주하는 내 태도에 스스로 실망스러운 한 해였다. 회사가 인수합병 되고 나서 여러가지로 팀이 불안한 상태이기 때문에 지금 안주할 수가 없는 상황이기도 하고 딱히 스스로 뭘 이루어냈다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내 기준에서는 지난 일년 반 동안 너무 많은 변화들이 있었고 그 시간 내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면서 달려가는 느낌이였다. 이 모든 것들이 어떤 성취가 아니라 기본적인 일상을 취하기 위함이였기에 나의 휴식이 더 사치처럼 느껴지고 실망스럽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계획된 휴식이 아니라 기진맥진해서 털썩 주저 앉은 느낌으로 쉬긴 했지만 그래도 쉴만큼 쉬었으니 내년에는 조금 더 계획을 세워놓고 변화에 대한 대비도 미리미리 해놓은 상태로 지내야겠다. 아직 비자가 완전히 나오지 않은 상태여서 큰 계획을 세우는 것은 힘들겠지만 이제 현상유지 보다는 성장에 대해서 다시 욕심내서 움직여야 할 시기가 된 것 같다. 커리어적으로도 그렇고 인간적으로도 좀 더 성장해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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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사고가 일어나서 속 시끄러운 날들도 좀 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이게 뭐 잘 해결이 난 것도 아니고 억울한 기분으로 그냥 저냥 넘어가서 아직도 기분이 말끔하진 않다. 어떤 한 편으로는 나를 정말 많이 도와주고 고마웠던 사람이 또 어떤 한 편으로는 그걸 빌미로 나를 우습게 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좀 떨어지기도 했다. 단순히 그 사람이 의도했던 것과는 다르게 상황이 흘러갔던 것이겠지만, 의도야 어쨌건 그런 발언과 액션들이 약자인 나에게는 공포와 압박이였기 때문에 화나고 억울했다. 내가 동양인 여자가 아니였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사건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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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참 정신이 무기력해졌던 시기도 있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자주 연락하면서 정신줄을 붙잡고 있던 와중에 비건식을 하는 친구가 채식을 추천해줘서 약 2주간 완전 채식을 했었는데 신기하게도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이후로 채식과 관련된 다큐와 책을 보고나서 고기에 대한 흥미가 완전히 사라지고 여러 단계의 채식을 시도해봤다. 나는 의지력이 약한 인간이라는 걸 알고있기 때문에 언제든 다시 고기가 먹고싶어지면 먹어야지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해산물까지는 먹는 페스코테리언으로 사는데 타협해서 반 년 째 잘 먹고 살고있다. 비건식 할 때 만큼의 가벼운 심신상태는 아니지만 고기를 먹을 때와 비교해보면 정신적으로 좀 더 에너지가 있는 느낌이다. 


    중국식 양꼬치가 소울푸드였던 나에게 이러한 식단변화는 꽤 큰 변화였다. 내 건강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했지만 사회적, 환경적으로도 조금이나마 옳은 방향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있는 결정이였고 계속 지속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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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반기로 넘어오면서는 부쩍 심심하고 외로움을 많이 타게 되었다. 친구들을 찾으려고 이런저런 모임에 기웃거렸다. 호주에서 생활한지 2년 넘게 한인 커뮤니티에는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는데 정말 외로웠는지 잠깐 발을 담궈보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왜 관심 없었는지 빠르게 다시 깨달으며 역시나! 하고 발을 뺐다. 


    아무래도 페미니스트인 나는 호주에서 한국인 남자 사람들과 잘 어울리기는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너무 상식밖으로 느껴지는 발언과 행동들이 많아서 경악한 날들이였다. 같은 모국어를 쓰는 사람인데도 말이 통하지 않고 다른 문화권 사람들과 부족한 영어로 하는 대화들이 훨씬 더 수월하다는 걸 느꼈던 신기한 경험. 


    이번에 한인 커뮤니티에서 본 사람들을 보면서 느낀점은, 당시 본인들이 자국을 떠날 때의 사회적 상황과 사고에 그대로 멈춰서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사회도 호주사회도 아닌 호주 안의 그들만의 작은 세계를 만들어서 문명화를 멈추고 그 안에서 복작거리며 산달까. 물론 다 그렇진 않겠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이들을 보면서 내가 받은 전반적인 느낌이 그랬다. 호주에 온지 2-3년이 지난 사람들과 최근에 온 사람들만 비교해도 느낌이 너무 다르더라. 


    한국 사람이 다 싫다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 있는 원래 친구였던 남자 사람들과도 여전히 잘 연락하며 지내고 있고 여기에서도 잘 지내는 한국인 친구들이 꽤 있다.(다 여자인 친구들이긴 하지만?)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만 대화해도 한국은 정말 빠르게 변하고 차별에 대한 인식도 발전하고 있는 걸 느끼고 있어서인지 여기서 봤던 그 한인 모임은 정말 기묘했다. 너무 명백하게 시대를 역행하는 느낌. 다시는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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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새롭게 느껴지는 인간관계는 지금의 남자친구다. 아직 연애 초반이라 판이한 문화권과 성장배경 때문에 오는 차이들이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으로 느껴지는 요즘이다.


    연애를 할 때마다 상대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은 늘 흥미로운 일이지만 아무래도 외국에서 경험하는 연애는 조금 더 새로운 세계를 엿보는 느낌이다. 나의 일상은 아직도 쌓아 나가야하는 기본 기반이 많이 남아있는데, 시드니에서 온 인생을 보낸 남자친구는 너무나도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호주사람다운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고 있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취향을 잘 키워나가는 사람이다. 그렇게 요즘 이 친구의 일상을 통해서 보는 시드니가 새롭고 재미있다. ㅡ골목 구석구석 남들이 잘 모르는 흥미로운 곳들을 탐색해 나가며 취향을 키워나가던 서울에서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도 하고.ㅡ


    남자친구는 자신의 일상으로 나를 완전히 끌고 들어가는 느낌이다. 일단 함께 보내는 시간이 굉장히 많다. 남자친구를 거의 매일 만나기도 하고 주말이면 이틀 내내 서로 집으로 돌아가는 일 없이 함께 보낸다. 주로 장거리 연애를 하느라 고생했던 나에게는 이렇게 충분히 친밀감이 느껴지는 거리가 무척 좋기도 하고. 주말 내내 함께 있다보니 남자친구의 오래된 취미와 취향, 친구들, 가족들이 포함된 일상을 통째로 경험하고 있는게 생소하면서도 흥미롭다. 


    그 친구가 나를 너무 좋아해서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기 보다는, 이게 가장 빠르고 솔직하게 상대를 알아가는 방식이라고 여기기 때문인 것 같다. 멀게만 느껴지던 이 곳의 평범하고 안정된 삶을 좀 더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이 때때로 내가 이방인임을 더 선명하게 느끼도록 만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남자친구가 없었다면 해보지 못했을 즐거운 경험들을 하고있다. 언젠가 나도 이런 일상을 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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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차별 문제에 민감한 편이기 때문에 현지인인 남자친구에 대해서 의심과 경계를 많이 하고 있는 부분도 있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동양인 여성으로 호주에서 살면서 현지인들과 함께 지낼 때 항상 노력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첫번 째는 외국인이라는 핑계로 저자세를 갖추지 않을 것. 두번 째는 현지인들을 한국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과대평가 하지 않고 상식적인 시선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다른 문화권으로 넘어온 사람의 입장이니 모든 다른 점들을 내가 수용해야 하는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이건 너무 저자세인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서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계점에 대해서 많은 대화를 하고있다.(싸우고 있다ㅋㅋ)


    어떤 관계에서든 차이점이 어디서 오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게 문화차이든 성격차이든 서로 조율이 안되는 문제가 있다면 스트레스 받으며 관계를 유지 하느니 헤어지거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낫고, 서로 마음이 있다면 기꺼이 맞추려고 노력하면서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게 되는 듯 하다. 여느 연애가 그렇듯 맞춰가는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율하고 맞춰가고자 하는 의지 자체에서 마음이 보이는 것 같다. 


    과대 평가에 대한 점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남자친구는 상식적인 수준의 옳고 그름은 인식하고 있고 차별적인 발언이나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인간대 인간으로써 존중받고 배려받는 연애가 이런것이구나 매번 느낄만큼 이 친구와 함께 있는 것이 무척 편안하다. ㅡ 존중이 아니라 신경 안쓰는거 아닌가 싶을정도의 쿨함이 보일 때도 있지만, 애정을 빌미로 뭔가를 강요받는 듯한 느낌보다는 나은 것 같다.. 사실 뭐가 나한테 맞는 연애스타일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ㅡ


    하지만 이민 경험이 전무한 백인 가족들 사이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여서 그런건지, 가끔 인종이나 젠더 문제에 있어서 살짝 모자란 공감능력을 보일 때가 있다. 묘하게 차별적 개그코드를 담은 티비쇼 같은 것을 즐긴다던가 하는 정도의 거슬리는 점이 있달까. 본인은 그게 잘못되고 멍청한 소리라는 걸 알고있기 때문에 웃는거지 공감하지는 않는다고 하는데, 막상 차별의 대상이 되는 입장에서는 웃음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런 면은 약간 아쉽다. 논란이 될 만한 토픽에 대해서 대화할때마다 서로의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데 방향성은 같지만 그 깊이에서 차이가 느껴진다. 역시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걸까? 딜 브레이커가 될 정도는 아니여서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그냥 넘어가버리지만 앞으로 어떻게 대화를 끌어 나가는게 좋을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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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자 때문이였을지 모르겠지만 지속적으로 마음이 불안하고 정신적으로 지쳤다. 그래서 뭔가 구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에너지도 동기부여도 부족했던 한해였다. 안정감에 대한 결핍을 사람들로 채우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지만 그게 오히려 나를 더 지치게 했다. 반성할 일이 많았던 한해. 2019년에 대한 다짐은 다음 글로 다시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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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Nogone